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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通信使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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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通信使硏究 Vol.34 No. pp.1-44
일본 사신의 조선 국왕 즉위 축하와 가쓰오부시[鰹節] - 1864년 고종 즉위 축하 사절을 중심으로 -
정성일 광주여대 교수
Key Words : Joseon Korea,Japan,Tsushima Domain,Japan House(K. Waegwan),King Gojong,enthronement,Celebration envoy,Diplomatic documents (K. Seogye),Diplomatic gifts(K. Byolpok),Dried bonito(J. katsuobushi)

Abstract

이 논문은 1864년에 일본의 가쓰오부시가 조선에 유입되는 과 정을 다루었다. 고종 즉위를 축하하고자 일본에서 건너와 1864년 11월 15일 부산 왜관으로 입항한 사절(使節)은 쓰시마 도주가 예 조 앞으로 보내는 서계(書契)를 지참하고 있었다. 그 서계와 함께 일본 사절은 ‘가쓰오부시[鰹節] 200개(箇)' 등이 포함된 외교 선 물을 조선 조정에 진헌하였다. 조선 국왕이 즉위할 때마다 일본의 축하 사절이 가쓰오부시를 선물로 가져오는 외교 관행은 1660년 현종 즉위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1864년 고종 즉위 때까지 그 관 행이 지속된 셈이다. 왜관에서 동래부(東萊府)로 전달된 가쓰오부시 등 일본 사절의 축하 예물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최종적으로 궁중(宮中)에 반입되 었다. 동래에서 한양으로 예물을 운반하고, 그런 다음 품질 점검 을 거쳐 최종적으로 궁중에 반입되기까지 적지 않은 인력과 시간 이 소요되었다. 가쓰오부시가 궁중에서 어떻게 관리[분배]되고 있었는지에 대해 주로 관심을 기울였던 한의학(韓醫學) 분야에서 는 일본에서 전통 산후(産後) 보양식 재료로 쓰인 가쓰오부시가 조선에서도 궁중에서 산후 보양식으로 즐겨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글에서 규명하지 못하고 남겨둔 연구 과제도 있다. 일본의 축하 사절이 조선 조정에 바치는 예물 속에 1660년부터 가쓰오 [가다랑어]가 처음으로 들어가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현재로서는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가쓰오 또는 가쓰오부시가 일본 사절이 조 선 조정을 제외한 다른 외교 관계자에게 준 예물[선물] 속에는 왜 포함되지 않았는지도 앞으로 더 밝혀야 할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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