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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通信使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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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通信使硏究 Vol.35 No. pp.57-102
18세기 조선 문인과 일본 남화가(南畫家)의 교유, 그 환경과 조건
김현권 대구간송미술관 개관준비단 학예연구실장
Key Words : Shinmyo Tongshinsa,Gihae Tongsinsa,Moojin Tongsinsa,Kyemi Tongsinsa,Relativism

Abstract

18세기 통신사행에 참여한 조선 문인은 자신들의 사상에 기초 하여 일본 인식을 보여주었다. 우선 신묘통신사행(1711)과 기해통 신사행(1719)을 이끈 소론과 북인계 남인 관료는 일본을 상대화 시켜 인식하려고 했으며, 도문분리(道文分離) 경향을 보여주었다. 특히 일부는 소라이학파[徂徠學派]와 공감대를 형성하기까지 했 다. 다만 두 사행이 이루어질 당시 외교환경은 차이가 났다. 그래 서 조선 문인은 신묘사행 때 남화가 중에 주자학을 따른 기온 난 카이[祇園南海]와 교유하였다. 반면 무진통신사행(1748)은 노론이 주도하고 매사(梅社) 동인 에 속한 소론 등이 가세하였으므로 주자학의 관점으로 일본을 파 악하려는 움직임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므로 일본 인식은 이전 사행보다 좀 더 부정적이다. 또한 당시 사행한 관료는 부류에 따 라 재도론(載道論)과 도문분리적인 경향을 가졌을 것이며, 문인화 관점으로 일본회화를 바라보았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 문인과 사 상적 성향이 두드러지지 않은 이케노 타이가[池大雅]의 만남만이 확인된다. 계미통신사행(1763)은 한일 회화교류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사 행을 이끈 조선 문인은 주로 노론이며, 나머지 문인들도 대부분 노론 낙론계인 김창협 형제와 관련되어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주자학의 시선으로 일본을 평가하였으며, 특히 고학(古學)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러면서도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에 근거한 상대 주의 관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재도론(載道論)을 주장하는 가운 데 일부 도문분리적인 경향을 가졌다. 이는 성대중이 키무라 켄카 도[木村蒹葭堂]에게 <겸가당아집도(蒹葭堂雅集圖)>를 부탁하는 교 유가 일어나게 했다. 이 교유는 훗날 친교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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